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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운전사 평범한택시기사의 특별한 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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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택시운전사에게,광주에 가자는 특이한 외국인 손님

서울에 사는 평범한 택시기사인 김만섭에게, 전라남고 광주시에 가자는외국인 손님이 나타난다. 10만원이나 준다는사실을 듣고 광주로 가기로 결심한다. 김만섭은 사우디아라바이에서 화물차기사로 일했기때문에 영어로 간단한 의사소통이 가능했다. 지금과 다르게, 그 당시 대학은 돈이 너무 많이 들었기때문에 부유한집안만 자식들을 대학에 보낼 수 있었다. 김만섭도 서울에서 시위하는 학생들을 보며 비싼돈주고가서 저런시위나 한다고한심하게 생각하는 사람 중 한명이었지만, 광주에 가서 직접 만나본 참혹한 상황에 만섭은 마음이 착잡해진다. 폭도와 빨갱이들이 폭동을 일으켰다는 순천의 신문과는 다르게 광주는 모든것이 검열되었고, 고립되었다. 주변지역에서도 광주의 실상을 알지 못했다. 만섭이 직접가서 마주 본 실상은 전혀 아니었다. 이 외국인 기자는 일본기자에게서 한국에서 심각한일이 일어나는것같다는말을 듣고, 이상함을 눈치채고 광주의 진실을 알리기위해 일본에서 한국으로 왔고, 아는 기자들에게서 광주로 가는 모든길이 막혔고, 연락이 두절되었다는소식을 듣고, 택시기사를 급하게 구해 광주에 가려고 했던 것이었다. 사실 외국인 기자손님이 아니었다면 이 민주항쟁은 폭동, 쿠데타으로 기억되었을지도 모른다. 김만섭은 사실 부처님오신날에 딸과 같이 소풍을 가기로 약속했지만, 어려운 생활고에서 한줄기 빛같은 10만원을 벌기위해 광주로 나선다.

 광주로 가는길 통로에는 바리게이트와 출입금지가 세워져있고, 군인들이 전차와 트럭으로 길을 통제하고 있자, 만섭과 외국인기자(이하 피터로칭함)는 당혹스러워 하기 시작한다. 훈련이라고 생각한 만섭은 너스레를 떨며 넘어가려고하지만, 군인들은 윽박지르기까지하며 실제작전상황이니 돌아가라고 협박한다. 하지만 만섭은 '노광주 노머니'라는 피터의 말에 어떻게든 광주로 갈 길을 모색하게 된다. 짧은 외국어 지식으로 피터가 한말 중 비지니스라는 말을 알아듣고, 피터를 사업가라고 착각하여, 다른 샛길로 광주로 들어가려한다. 그 샛길도 군인들이 막굈었는데, 만섭은 중요한 서류를 놓고 와, 우리나라 물건을 수출할 수 없게되었으니 서류만 가지고 오겠다는 거짓말로 통과하게 된다. 실제로 외국회사 주재워느로 위장하고 광주에 남아있는 회사부장을 빼오겠다고하며 보초병드를 속여 광주로 들어갔다고한다. 광주에 들어가니, 거리에는 사람이없고, 가게는 문이 닫혀있고 거리에는 부서진 물건들이 흩어져있었다.

 대학생들을 태운 낡은 트럭을 만나고, 그곳에서 대학생들과 이야기하다가 피터가 독일에서 온 외신기자라는것을 알게된다. 만섭은 이 상황을 폭도들의 폭동으로 알고있었기때문에, 서울로 돌아가려고 한다. 하지만 돌아가는길에 한 아주머니의 아들이 군인들에게 맞아 머리가 깨져 병원에 가야한다는 말을 듣고 설마...하며 의심했지만, 고등학생까지 부상당한것을 본 만섭은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상황이 이상함을 깨닳게된다. 부상자들을 호송하는 택시 기사들까지 군인들이 죽이려고한다는말에 만섭은 빋지못하고, 왜 군인들이 그런짓을 하냐고 물어보는데, 그질문에 대학생(이하 재식이라 칭함)우리도 왜 그런지 모르겠다고 대꾸한다.  언론을 통제하여, 폭도들이라고 착각하고 있었던 만식은 너무 평화로운 시위광경에 놀라워하기도 한다. 

 

 민주화운동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기위해 피터는 근처 건물 옥상으로 올라가는데, 공수부대 군인들이 시민들을 향하여 최루탄을 살포하고 진압봉을 휘두르는 폭행장면을 목격하게 되며, 만섭은 방관자의 입장에서 직접 참여하는 사람이 된다. 이런 상황에서 군인들이 외신기자인 피터가 카메라로 이러한 상황을 찍는것을 발견하고, 잡으려하지만 도망에 성공한다. 군부대서는 피터를 찾아내려고 서울 택시를 찾을 것을 지시하게 된다. 우리나라 기자들도 진실을 보도하려고 노력하지만, 보안사에 끌려갈지도 모른다는 무서움에 다른 기자들이 신문제작을 하지못하도록 한다. 이렇게 언론이 통제되며 광주는 폭도들에게 점령되었다고만 뉴스에 보도된다. 군인들에게 쫓기던 만섭과 피터는, 대학생 재식이 세계에 꼭 진실을 알려달라고하며, 재식 희생으로 도망치게된다. 만섭은 그날 새벽에 서울로 돌아가기위해 몰래 새벽에 출발하려하는데, 광주택시기사인 태술이 뛰어나와 공수놈들이 서울택시를 눈에 불을 키고 찾고 있다며, 전라남도 번호판과 광주 지도를 주며 빠져나갈 샛길을 알려준다. 순천에 도착한 만섭은 너무 평화로운 일상을 보고 마음이 이상하다. 

 뉴스에서는 빨갱이들이 광주에서 폭동을 일으켰다는 말만나와 광주의 참상을 모르고 있고, 왜곡되고있다는 사실에 만섭은 마음이 불편해지며, 광주로 다시 돌아가기로 한다.  광주로가 병원에서 싸늘한 주검이 되어있는 재식을 발견하고, 넋이 나가있는 피터에게 이걸 찍어서 널리알려아한다고 다시 사명감을 일깨워준다. 만섭은 끝까지 함께하겠다고 하며, 피터를 도와 이 실상을 알리려고 노력한다. 광주 대학살이 일어난 금남로에서는 공수부대가 애국가를 부르는 시민들에게 사격을 가하고 있었으며, 군인들의 총격에 맞아 쓰러져 죽어가는 사람들과 부상자를 실어나르는 택시기사들로 가득했다. 불특정시민들에게 무자비한 총격에 태술을 비롯한 택시기사들은 사람들을 구하기위해 택시로 바리케이드를 치고, 더 이상 머물면 광주를 못 벗어날지모르니 어서 탈출해서 진실을 알려달라는 사람들의 말에 만섭과 피터는 다시 서울로 향하게 된다. 하지만, 모든 길에 군인들이 검문소를 세워 지나가는 사람들을 검사하고 있었고, 박중사는 트렁크에서 서울택시번호판과 카메라 가방을 발견하지만, 박중사는 통과시키라는 명령을 내린다. 박중사는 명령불복종을 할 수없는 부하들이지만, 광주에서 벌어지는 끔찍한 실체를 알리려는 군인을 상징하는 캐릭터이다. 검문소를 통과했지만, 택시를 쫓아오는 군인들의 차를 광주택시기사들이 방해하며 만섭의 택시가 도망갈 수 있도록 도와주며 무사히 김포공항까지 도착하게된다. 피터는 교란작전으로 일본가는 비행기를 탑승하게되고, 과자깡통안에 필름을 넣고 위아래로 과자깡통을 위아래에 위치하게 하여 선물로 위장한다. 피터는 만섭에게 일본가서 보도후 바로 다시 한국입국하여 택시수리비를 주겠다고 이름과 연락처를 적어달라하지만, 만복은 군부정권의 탄압하는 모습과 자신이 도와줬다는 사실을 알게되면 안기부나 보안사에서 자신과 주변인들까지도 어떤 일을 당할지 모르겠다고 생각하여 사복이라는 가명을 적어주게 된다. 이 이후로 피터는 만복을 만나고싶어하지만 찾을 수 없다. 

 택시운전사 영화가 개봉 된 이후, 만복의 실존인물 김사복의 아들의 제보로 실존인물의 근황이 알려졌다. 끔찍한 광주의 실상을 목격한 김만복의 실존인물 김사복은 술로 고통을 달래며 살다, 폭음으로 간암을 얻어 5.18 민주항쟁 4년뒤 돌아가셨다고한다. 군부가 자신을 찾아 자신이 살해될거라는 불안감도 한몫했을것이라고 한다. 독일 외신기자인 피터는 (실존인물은 힌츠페터) 강대국인 독일인을 건들일 수 없었지만, 만복은 달랐기 때문에 한국기자들도 피터에게 그를 찾지않는것이 나을지도 모른다는 말을 했을 정도라고한다. 힌츠페터와 사복은 결국 살아서 만나지는 못했지만, 아들의 제보로 근황을 알게되었다.

 

실제 5.18 민주항쟁을 다룬 영화

택시 운전사는 실제 5.18 민주항쟁을 배경으로 한 외신기자와 택시기사의 위험천만한 광주잠입취재의 실제 이야기를 담은 영화이다. 이 당시 전두환의 권력 이양 및 11대 대통령 취임 후 군사독재 시절이었으며,  서울의 봄으로 민주화의 열기가 거세지자 반란군은 비상계엄을 전국확대하였고 이는 6월 민주항쟁에 동기를 부여하였고 이때 무장한 군인들이 무력으로 시위를 진압하고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민간인을 무자비하게 학살하였으며, 시위와 상관없이 지나가던 일반 시민들까지도 진압병으로 두드려패고 총으로 쏴 죽이는등 불법처형을하고, 아이들까지도 쏴죽이며, 성폭력등 성범죄까지 저질렀다. 이를 참을 수 없었던 시민들이 시민군을 조직하여 대항했지만 신군부에의해 진압당하며 탄압하였다. 대한민국의 민주화 과정으로 군부독재에 항거하는 시민들의 숭고한 희생으로 현재의 대한민국이 있다.

5.18민주항쟁은 언론통제로 인해 처음에는 광주사태, 광주소요사태라고 불렸으나, 현재는 광주민주항쟁, 광주민주학살, 5.18민주항쟁으로 부르며, 현재교과서에서는 광주민주화운동으로 부른다. 

 실제 광주 민주화에서 시위때 훌라송을 개사하여 노래를 불렀다고한다. 아일랜드의 음악인 훌라송 Johnny, I hardly knew ya 를 행진곡으로 사용하였다. 고도의 심리전이다. 택시운전사에서 영화 초반부, 대학생 시위운동가들이 병원으로 이동할때와 금남로 행진장면에서 이 훌라송 버전으로 개사 된 곡을 부르는 장면이 나오며, 민주화 운동 마지막 날 광주를 포위하던 계엄군이 도청 탈환작전을 펼치며, 광주 민주화운동을 잔혹하게 진압할때도 이곡을 시민군의 투항을 권유하는 선전방송으로 사용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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